본문 바로가기
이시다 유우(石田ゆう) 모음

단편집 '천국에서 태어난 우리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

by 쓰레기 전문 번역가 2024. 5. 25.

 

 

 

 

 

남기는 말

처음 뵙겠습니다. 이시다 유우라고 합니다. 제 첫 단편집인 '천국에서 태어난 우리들의 이야기(天国に生まれた僕らの話 石田ゆう短編集)'를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단편집은 지금까지 제가 그린 단편들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테마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과거에 그렸던 개그만화 1편은 일부러 뺐습니다.

 

 

 

 

 

 

 

 


개도 먹지 않는 나( 犬も喰わない僕 )

이 작품은 만화전문학교 졸업작품으로 그렸던 겁니다. 작품 전체에 저의 콤플렉스들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수업시간 내내 낙서를 하는 아이였습니다. 당시 그림은 제게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어줬습니다. 하지만 반에는 저보다 잘 그리는 학생 2~3명씩은 꼭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있자면 제 그림은 골목길 낙서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고, 제 자존감도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꿈을 접은 뒤 얌전히 취직을 했습니다만, 살면서 꿈에 대한 갈망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전문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꿈을 쫒다 실패하면... 그런 상태에서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난다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진실을 불어버리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했던 생각이 이 작품의 스토리라인이 됐습니다.

 

 

미인은 사흘만에 질리지 않는다(美人は3日では飽きない)


이 작품은 제가 만화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그린 첫번째 작품입니다. 감사하게도 이걸로 치바 테츠야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SNS에 치바 테츠야 선생님이 이 작품을 검토하시는 모습이 올라온 적 있습니다. 그 걸 보고선 '내일의 죠를 그린 사람이 내 만화를 봐주고 있어...!'라고 혼자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3년 전,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었을 당시 주변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감정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미인에 대한 열등감으로 점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연애경험도 부족했고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속으로는 제가 또래들에 비해 뒤떨어지진 않는다고 자뻑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미인 정도는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정신승리를 하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을 비틀어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미인은 사흘만에 질린다'라는 속담을 일부러 뒤틀어봤습니다. 솔직히 아무리 시대가 흘렀다고 하지만 어떻게 남자가 미인을 싫어하거나 질릴 수 있겠습니까? 마음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그만큼 중요하죠. 장담하건데, 미인은 절대로 사흘만에 질리지 않습니다.

 

 

 

 

 

 

 

 

블루블루 스프링(ブルーブルースプリング)

나잇살 먹은 어른이 교복을 입고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주제를 바탕으로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을 읽은 담당 편집자님은 '그 시절, 그 때에 두고 온 감정에 손이 닿은 느낌'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제 작품들중 엔딩이 주는 여운이 제일 담백하고 깔끔했다고 하시더군요. 현실도피를 꿈꾸며 교복을 입고 동네를 배회하던 여주인공도 나름 매력있었다고 합니다. 현실이라면 무리가 있을 만한 설정입니다만, 실제로도 남들 몰래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없진 않겠죠? 클럽에도 교복데이 이런게 있는 세상인데요. 이 작품을 단편집의 마지막에 실은 이유도 마지막이 주는 여운 때문입니다.

 

 

 

 

 

 


마녀와 나(魔女とわたし)

이 작품은 '같은 세계'로 들어간다는 주제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아키코와 유리가 어떠한 감정을 계기로 얽히게 되어 자신들만의 세계에 들어갔는지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학교는 사회생활의 축소판으로서 사춘기 청소년들의 순수했던 감정들이 상처받고 왜곡되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 속에서 변화하며 성장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둘의 사이는 흔히들 말하는 '보빔' 같은거 말고 순수한 우정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여자끼리의 우정을 제가 알긴 힘들어서 다른 작가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자들의 감정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유리를 영국계 혼혈로 설정한 이유는 과거 일했던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인턴이 영국인 유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작화는 지금까지 그린 작품들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장당 파일 크기도 꽤 컸고, 배경도 일일히 취재해서 넣은 것들이었습니다. 64페이지라는 긴 여정에 동기부여를 하느라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빛의 향방(光のゆくえ)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들은 직장이나 학교등 특정장소, 감정등 등장인물들이 서로 공유할만한 무언가가 존재했습니다. 그런 공통된 관심사는 보통 다른사람과의 관계를 연결 시켜주거나 더 깊이있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난 상대와 어떻게든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등 이기적인 동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은 작품의 추진력과 매력이 되기도 하지만 발전을 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동기로 만난 인간관계는 가끔씩 타인에게 기대를 품지 못하게 되거나 인간관계가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럴 바에야 아무것도 공유되지 않는 쌩판 남남끼리 만나는 이야기를 그려보자하고 이 작품을 그리게 됐습니다. 이런 종류의 만남도 현실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왜 하필 전파장애를 배경으로 설정했는가 하면, 모든게 스마트폰과 SNS로 연결되는 현대사회에서 그런 연결고리를 따 끊어버리기 딱 좋은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 직장도 학교도 아니고, 공통된 취미나 관심사, 성적 이끌림,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아는 사람끼리 만나려면 이정도 사건은 있어줘야 개연성이 있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