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일번(突撃一番, 1984)
주간 영점프 1984년 37호 수록 단편.
이 만화는 일본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작가 이시자카 케이는 중국인 어머니를 둔 화교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차별이라는 것을 몸소 겪었고 이 때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성인이 되어서는 아이, 여성, 노인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신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일본 최대의 소수민족인 재일교포들에 대해서도 매우 많은 관심을 가졌다. 1979년 만화가로 데뷔한 그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이런 인물들을 자주 등장 시켰다. 약자에게 연민을 가지는 그녀의 이런 태도에는 스승이자 멘토였던 데즈카 오사무의 영향 또한 적지 않았다.
1984년, 그녀는 영점프에 안온족(安穏族)이라는 옴니버스 시리즈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었다. 안온족은 전쟁, 폭력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룬 단편만화들이었다. 그녀는 작품의 소재로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정신대(挺身隊)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자원봉사 단체로 생각 해왔던 정신대의 실체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고 ,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의 실태와 전쟁범죄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이 소재를 만화로 그리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시기가 1980년대라는 점이다. 당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조차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맹점이었다. 따라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양심선언으로 말한 단편적 정보 밖에 없었으며 이런 내용을 다루는 곳도 일부 진보언론이 전부였고 대중들에게는 찌라시로 여겨졌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도 그녀는 직접 발로 뛰며 피해자들의 증언, 혹은 위안부들을 본 일본인들의 경험담을 취재하며 자료를 모았다. 그중에선 '조선인, 중국인 위안부'들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작가는 이렇게 작품 속에 조선인 소녀들의 이야기도 추가하게 됐다.
그렇게해서 그려진 '돌격일번'은 주간 영점프 1984년 37호에 실렸다. 이 만화는 즉시 엄청난 혹평과 비방에 시달렸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정신대가 부상병 간호등의 근로지원을 하는 자원봉사단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시에는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팩트보다는 대부분 생존자들의 주관적인 증언에 의존했던 터라, 그녀의 주장은 완전 '개소리'로 치부되었다. 막 성장하던 신인작가였던 이시자카 케이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지만 어째어째 넘어갔다. 그렇게 이 만화는 흑역사로 묻히는가 싶었다.
참고로 훗날 작가가 밝힌 바로는, 이 만화를 그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주간 영점프 편집자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처음엔 너무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소재라며 머뭇거렸지만 편집자 쪽에서 일단 실어줄테니까 그려보라고 했다고 한다. 80년대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의 호황으로 인해 모든 것이 잘 팔리던 시기였다. 영 점프 역시 그랬다. 하지만 1984년 영점프 편집진들은 학원물과 러브 스토리만 실기보단 뭔가 진지한 만화도 한두개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런 권유를 했다고 전해진다. 판매부수 따윈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던 시절이라 이런 문제작도 거리낌 없이 실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절대 연재하지 못했을 작품'이라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돌격일번'은 안온족(安穏族) 3권 초판에 당당하게 실려 출판 되었다. 남성우월주의가 매우 강했던 일본에서는 당연히 안온족은 마이너한 소재였고, 일부 진보언론이나 사회운동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히트치진 못했다. 그래도 여성들에게 어느정도 인기는 있었는지 총 7권까지 나왔다. 심지어 그녀의 스승인 '만신'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작가가 이 만화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게 된 것은 1991년, 일본의 대표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위안부 피해문제를 보도하면서부터였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되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각지에서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자료들이 발견됐다. 이런 사회적 현상에 힘 입어 작가는 자신의 단편집인 '올바른 전쟁(正しい戦争, 1991)'에 이 작품을 포함시켜 다시 한번 출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 역시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냥 그런게 있다더라'라는 정도의 이슈만 되고 묻혀버렸다.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2010년대에 '돌격일번'은 다시 한번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한류에 친숙한 젊은 세대들, 혹은 위안부 문제에 관심있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이 만화를 발굴하여 인터넷과 SNS에 소개하였고, 현재 이시자카 케이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시절, 혼자서 진실을 밝히려고 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재평가와 달리, 정작 제일 민감해야할 우리 한국인들은 이 만화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 글쓴이 본인 역시 본래 데즈카 오사무의 '긴 땅굴(ながい窖)'을 조사하던 도중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정도다. 다행히도 입수하는데 큰 지출이 있었던 긴 땅굴과 달리, 이 작품이 실린 단편집 '올바른 전쟁'은 구하기가 쉬웠다. 이 번역본 역시 긴 땅굴과 마찬가지고 본인이 스캔과 보정, 번역과 식질을 거쳐 이렇게 공개함을 알린다.
거의 40년 가까이 된 작품이거니와 당대 위안부 문제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기 전에 나왔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오류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룬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의 역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전쟁의 기억을 제대로 전달해야만 한다. "위안부라는 말은 전시 중에는 없었다"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군대가 주둔하는 곳에는 항상 매춘을 하는 여성들이 존재했으며 그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나라에서 나서서 여자들 보급하고 행군시 데리고 다니도록 한 군대는 구일본군 밖에 없다. 그들에게 있어 성병은 전투력 상실이라는 의미가 전부였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은 그게 싫었을 뿐이다. 그런 여자들을 상대로 병사에게 「돌격 제일」이라고 하는 장난스러운 네이밍의 콘돔을 배포하였고, 성욕을 해소한 병사들이 전선에서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건 국가단위의 개그이며, 전쟁의 놀라움이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전쟁에 관련된 기억이 점점 잊혀지고 '자존 자위를 위한 올바른 전쟁이었다' 등이라는 역사의 미화가 진행되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건 바꾸어 버리자는 풍조는 이러한 역사의 미화나 내셔널리즘의 고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 작가 인터뷰 中,
http://www.magazine9.jp/interv/ishizaka/index2.html
제목인 돌격일번(突撃一番)은 2차대전 당시 일본 군부가 병사들에게 배포한 군용 콘돔의 이름이다. 대본영 입장에선 성기강 문란으로 인한 군인의 전투력 손실은 아주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를 막기위한 조치였다. 이 콘돔은 무료로 배포했으며, '천황의 하사품'으로 불리었다. 각 부대에선 성교육 시간을 따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성교 시 이 콘돔을 착용하고 귀두 끝에 군용 소독연고를 바르라고 교육했다. 다만 군에서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내부에 윤활유도 들어있지 않아 착용감이 매우 뻑뻑했다. 품질도 조악해서 잘 찢어졌다. 위안부들은 휴일에 이 콘돔들을 수거해서 다시 사용할수 있게끔 세척하고 소독약을 뿌리는 일도 해야만 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진품의 경우 고무는 이미 다 경화되어 삭아버렸지만 수집가들 사이에선 개당 수만엔을 호가할 정도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당시 이 콘돔을 생산했던 일본기업 리켄고무공업(理研護謨工業)은 훗날 오카모토에 인수합병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이 콘돔의 존재가 이미 인터넷 상으로 알려져있으며, 특이한 네이밍 센스 탓에 모에화 되고 있다. 일부 극우단체의 관련행사에서는 레플리카로 만들어져 판매하기도 한다. 그 비극의 역사의 증거물이라는 설명은 하나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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