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1997년 7월 14일, 가이낙스 본사에서 진행된 니노미야 히카루(二宮ひかる)와 안노 히데아키의 대담이다. 안노는 반년 전 쯤에 그녀의 단편집인 '유혹(誘惑)'와 '연인의 조건(恋人の条件)'을 읽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Air/진심을, 너에게》 개봉을 앞둔 감독과 두번째 남자(二番目の男)부터 첫사랑(初恋) 까지 단편 4편을 연속으로 기고해 온 작가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 이이다 타카시(飯田孝) (주: 낙원 Le Paradis 편집장)
영 애니멀(ヤングアニマル)1997년 16~17호 수록
니노미야: 수고하셨습니다. 일은 잇따라 계속되고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안노: 아니요, 드디어 끝났으니까요. 지금은 실감이 납니다.
니노미야: 실사 영화(주: 러브&팝)는 다음 달부터 들어가시는 건가요?
안노: 내일부터입니다.
니노미야: 극장 공개 전에 또 다음 촬영에 들어가시는 겁니까? 기자회견 같은 것도 없이.
안노: 네, 없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스태프 분들이 계신 곳에 들어가서....
니노미야: 그럼 합숙인가요? 아니면 통근으로?
안노: 지금은 통근하고 있습니다. 크랭크인 자체는 8월 초부터입니다.
니노미야: 원작자인 무라카미 류(村上龍) 씨가 영화 판권을 통째로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케이스라던가.
안노: 아, 그렇네요. 좀 더 다른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다만 본인이 (영화 감독을) 맡으시는 분이라 사양하고 있었던 걸까요.
니노미야: 안노 씨 측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러 가신 건가요?
안노: 예. 본인과 직접 만나서… 원작을 받으려면 본인의 OK를 얻어야만 하니까요. 그래서 직접 만나 뵈었습니다. 가서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했더니, "러브 & 팝을 원하시는 거죠? 드릴게요"라고 하더군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일 이야기가 끝나버렸습니다.
니노미야: 그 작품을 영상으로 찍는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노: 아니요, 뭐랄까, 아마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니노미야: 음. "무라카미 류는 영화를 찍지 마라"라는 말을 듣곤 하잖아요. 본인이 어딘가 책에서 답하셨던 것 같은데,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문장을 너무 잘 쓰시니까요. 『러브 & 팝』에서 주인공 소녀의 표정이 상상되지 않는 문장으로 쓰고 계시잖아요, 일부러 상상하게 만들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문장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이걸 영상으로 찍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요.
안노: 그건 말이지요, 영상으로 찍으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예요. 그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니노미야: 그렇군요… 뭔가 분명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소설은 역시 잘 읽으시는 편인가요?
안노: 시간이 나면 뭔가 하나쯤 읽으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시간이 없어서요….
니노미야: 저는 활자를 좋아해요.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현실도피로 활자 속으로 도망가곤 하거든요.
안노: 에에(웃음).
니노미야: 무라카미 류 씨의 작품은 쭉 한 줄로 늘어놓았을 때 꽤 한쪽으로 치우쳐 있잖아요… 양 극단 중 한쪽 끝에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안노 씨께서 어떤 인터뷰에서, “여자의 가슴에서 울고 싶다”라고 대답했던 때에, 확실히 무라카미 씨의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그런데 그걸 읽었을 때, 남자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무라카미 류는 “여자는 굉장하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뭔가 무라카미 씨의 말투는 남자 쪽 시선 같달까요(웃음). 남자가 여자의 가슴에서 엉엉 우는 게 대단하다고요.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서 울지 않는 건가요? 여자가 우는 모습이라는 건, 자신을 어디까지나 극적으로 보이게 하잖아요. 여자보다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 쪽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안노: 음—. 저는 무라카미 씨와 마찬가지로 여자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자의 가슴에서 운다는 건, 남자라는 건 언제까지고 결국 아이 같은 존재라는 뜻이죠.
니노미야: 여자도 아이이긴 해요. 다만, 그 행동거지가 교묘해질 뿐이죠.
안노: 행동거지가 교묘해진다는 건, 쓸데없는 부분이 사라진다는 뜻이고,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의미 아닐까요.
니노미야: 아아, 그렇군요….
안노: 요령 좋음을 몸에 익힌다는 건 결국 테크닉의 문제니까요. 적어도 그 점에 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른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거든요.
편집자(이이다): 허리를 삐끗하셨나요?
안노: 이제 완전히 안 되겠더라고요. 다음에는 제대로 의사한테 가보려고요. 이젠 웃을 일이 아니게 됐네요….
편집자: 꽤 심각한 이야기네요.
안노: 아니요, “웃을 일이 아니다”라는 건, 이제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되겠다는 의미예요.
편집자: 아아, 실례했습니다.
안노: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웃음), 일 때문입니다. 여기 15평짜리 맨션에 틀어박혀 있었거든요. 그때는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자세로 몸이 굳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건 차라리 곧게 편 쪽이 나았어요. 일어설 때마다 특히 잠에서 깼을 때 심한 통증이….
편집자: 안노 씨는 고양이등 이미지가 강해서, 그래서 에반게리온을 봤을 때 “아, 이건 안노 씨다운데”라고 생각했어요.
안노: 꽤 있죠. 그리고 그때 울트라맨이 외형이 너무 울퉁불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노: 뭐, 울트라맨이라는 건 사람에게 설명하기 편리하니까 쓰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건 고양이등 같은 체형이거든요. 제 형태가 그렇게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리면 몸통이 굵어집니다. 가끔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초호기(初号機)를 그리는 것과 비슷해지기도 하고요. 별로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편집자: 거기에 있는 피규어나 크리처도 그렇잖아요. 전부 비슷비슷하다고 할까.
안노: 사다모토 요시유키(貞本義行) 씨나 모토다 타케시(本田雄) 씨처럼, 사람에 따라 실루엣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림체에 따라서도 전혀 다르고요. 부품이 같다는 것만으로 애니메이션(アニメ)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닐까요.
편집자: 그런데 스트레스는 있으신가요?
안노: 스트레스라… 아니, 간극이라고 해야 하나? 다만 용납할 수 있는 간극과 용납할 수 없을 때는 바로잡아야 하는 간극이 있어요.
니노미야: 영화는 한 편 자체가 길잖아요. TV 애니메이션(TVアニメ)도 한 화가 20몇 분이지만 전체로 보면 길고요. 결국 한 작품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평생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 수는 한정되어 있잖아요.
안노: 네, 그렇죠
니노미야: 그렇게 되면 “여기서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이 완성됐을 때의 카타르시스도 큰가요?
안노: 아니, 별로 관계없네요. 길어도 짧아도,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은 분 단위에서는 별로 변하지 않아요.
니노미야: 끝났을 때의 「오예 끝났다!」라는 느낌이, 안노 씨를 보고 있으면 「지쳤다~」라는 느낌이라 귀여우시달까 그렇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안노: 은혜 갚은 꿩 같은 느낌입니다.
니노미야: (웃음) 깃털을 짜 넣고 있는 듯한. 이제 스스로 뽑아 버려서.안노 끝났을 때는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깃털이 자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네요. 뭐, 이번에는 깃털이 자라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면 정말 또 1년, 2년 아무것도 안 하게 되어 버리니까 다른 사람의 깃털을 빌려서 만든다는 느낌입니다.
니노미야: 과연.
안노: 그러니까 대여 의상인 거예요. 히토 님의 원작이니까요.
니노미야: 하지만 다른 것이 되려고 하면 그럴 테니까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또 자신을 쥐어짜 버리게 되는 걸까.
- 눈에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스타트입니다 -
안노: 성공이라든가 실패라든가… 으음… 뭔가 무책임 같은 느낌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최저한 확보해야만 하는 것은 말이죠, 해 준 각 스태프의 사람이, 해서 손해를 보았다고 할까, 하지 말 걸 그랬다든가,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요. 뭐, 그것이 하나고요. 또 하나는 상업 작품이니까 돈을 내준 사람이 손해만 보지 않게 하면 되는 거죠. 대박이야 그때의 운이니까요. 내준 금액에 대해 최소한의 보증만 해주면 되는 겁니다. 비디오가 2만 장 팔려서 본전을 뽑을 수 있는 것이라면, 최소한 2만 장은 팔릴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4만 장이 팔릴지, 10만 장이 팔릴지, 20만 장이 팔릴지는 정말이지 하늘의 운 같은 거잖아요. 세상의 애니메이션 중에는 히트하는 애니메이션만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운 좋게 맞아떨어진 애니메이션이 있을 뿐이니까요. 그것은 결과론이죠. 다만 최소한의 보증만큼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두 가지 점이네요. 그리고 손님에게 보여주는 이상, 재주(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과요.
니노미야: 그렇군요. 하지만 단순하게 들어도 "아, 책임이 무겁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만화를 그리고 있으니까 가내수공업이라서, 어시스턴트 분들에게 급여를 줄 수 없게 되면 안 되고, 저도 먹고살 수 없게 되면 그만이고, 출판사야 쓰러질 뿐이고요. 나머지는 뭐, 출판사는 출판사 사정이고, 제 작품 한 편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생각은 전혀 안 합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했던 성공이라든가 실패 같은 건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수용자(독자)의 만족감 같은 건, 음, 순위로 치면 3번째나 4번째가 없어서 5번째쯤 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안노: 그건 3번째나 4번째가 없어서 5번째쯤 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네요. 역시 눈에 보이는 사람들부터 시작하는 법이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이 가장 마지막이 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니노미야: 손님의 말씀이라는 건, 고작 저 같은 사람이 깔짝깔짝 대는 독자의 목소리조차 제 자신은 엄청나게 좌지우지되는데, 아마 안노 씨 같은 분에게 찾아오는 시청자의 목소리라는 건 엄청나겠지요.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이상해지겠구나 하고 상상이 가네요.
안노: 뭐,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늘어났으니까요 (웃음).
니노미야: 이상한 사람 (웃음). 그리고 「독자는」이라고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점이 확실히 있어서, 한쪽 독자는 「더 야하게」라든가 「고추 그리고 있지 않으면 어린애 속이기다」라든가 써 놓는단 말이죠. 그러는 한편으로 「인기를 끌기 위한 수법으로 야한 걸 넣는 건 이제 용서할 수 없다」라고 써 놓기도 해서... 그것이 「독자」라는 엄청나게 큰 거인의 입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너 아까는 그렇게 말했잖아」 (웃음). 어느 쪽 의견도 듣고 있으면, 「아아, 독자의 이상 따윈 실현할 수 없겠구나」라는 기분이 들게 돼요.
안노 : 독자라는 건 막연하지 않습니까? 종잡을 수 없는 법이에요. 하지만 95% 정도의 관객(시청자)의 반응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뭐, 나머지 5%라는 것이 제 이상의 사람이 있다는 뜻이겠죠. 저도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 "아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만, 95%의 반응이라는 것을 대체로... '예측하면 이렇게 되겠지?' 하는 의견의 예상도 같은 것을 쭉 나열하고, 그 끝에서 끝까지로 거의 망라해 버립니다. 뭐, 이런 말 장난은 발칙하긴 하지만요. 그런 걸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장사가 아닙니까?
니노미야: 그렇군요
안노: 인과적인 장사라고 봅니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거지만요. 그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고... 하지만 손님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은 하게 되네요.
니노미야: 음. 그렇게 말하면 이렇게 받아치는 방식으로 점점 논쟁을 관객 측에서 걸어오면, 이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고 해야 할지, 무엇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이제 그만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듯한 논쟁이 되어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안노: 네. 아니, 이 정도로 본질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이 많을 줄은 몰랐네요. 일본의 민도(民度)가 낮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니노미야: 확실히,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붙이거나 트집을 잡거나, 어려운 말을 늘어놓으며 무언가 해낸 듯한 기분이 되기에는 에반게리온은 안성맞춤인 재료였던 것이죠.
안노: 네. 뭐, 새로운 잣대의 하나가 되었나 하는 느낌은 듭니다. 공통 언어 중 하나가 되었다면, 뭐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으려나 하고요.
- 원본 그대로 내놓을까, 한번 필터링을 거쳐야 할까 -
편집자: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원작물은 제작자가 정면으로 관객(독자)과 부딪히는 일이 드뭅니다만, 『에반게리온』이나 그녀의 만화는 이제 뒤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만큼, 관객과 충돌하는 일도 있지요.
니노미야: 사실은 무서워서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독자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다음은 없다'라며 돌아설지 모른다는 무서움이 있으니까요. 받아들여지면 좋겠지만, 왠지 잊혀지는 상황이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쓸데없는 노력이 되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안노: 아, 그런 건 없습니다. 걸어온 싸움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그것도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의 형태이니까요.
니노미야: 음…… 그렇군요 (웃음).
안노: 아사리 요시토오(浅利 義遠) 씨의 만화는 그렇지 않습니까 (웃음).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고 상대가 받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저런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니노미야: 상대에게 싸움을 걸었는데, 그쪽에서 사 주지도 않고 긍정도 하지 않는…… 무시당해 버리는 공포라고 할까요. 저는 풋내기(신참)니까 그런 공포가 가장 큽니다. 반발당하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거든요.
안노: 뭐, 무시당하는 게 가장 괴롭다고 생각해요.
니노미야: 묻혀 버린다고 해야 할까요…… 뭐, 좁은 곳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상태잖아요, 지금은. 좁은 대로의 재미는 있지만요. 어느 정도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제약을 붙이게 되면 게임에 규칙이 있는 것 것 같고, 사용 편의성이 반대로 나오는 부분도...
안노: (庵野)그렇네요.
니노미야: (二宮)그것에 완전히 올라타 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올라타는 게 아니라 반칙하지 않는 선에서…… 그래도 일단 그리는 건 나야, 라는 그런 느낌으로 하고 싶었어요. 다만 이건 남자친구나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을 때 아주 흔히 있는 일인데요, 스스로 말을 골라 가며 하다가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해버린 것 같은데 왠지 그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 그걸 작품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말할수록 무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단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또 다음 말을 하고(그리고) 싶어지는 거죠. 그리고 계속 혼자서 떠들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게 되어 버려서……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안노: 음, 뭐 거기는 테크닉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번역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랄까,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은 것——예를 들어 영어라고 한다면, 독자라는 존재는 일본어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자신 안의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해야만 하는 거죠. 그래서 그 번역 작업을 잘못하면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웃음). 잘 번역하고 싶다면 단어 하나 고르는 데도 음미해야만 한다는 것. 조사 하나만 틀려도 완전히 뉘앙스가 혼란스러워지니까요. 특히 문학의 경우엔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합니다만… 옛날 사람들은 번역 작업에 목숨을 거는 면도 있는 것 같지만, 저희 세대쯤 되면 그런 답답한 것은 싹 걷어내고 원액 그대로 콸콸 쏟아내는 것도 오케이 같은 느낌으로 가고 있긴 하거든요. 아무래도 아저씨들에게는 반응이 별로네요 (웃음).
니노미야: 할아버지란 누구를 말하는 걸까? (웃음). 가끔 사이좋은 친구와 뉘앙스로 이야기하면 아주 기분 좋게 받아들여 주는 때가 있잖아요. 그것을 기대하고 원액 그대로 흘려보내 버리는 걸까요.
안노: 하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아직 괜찮다고 생각해요. 한 번 필터를 거치잖아요. 자기 눈앞에서 그런 짓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 자체가요. 그런데도 만화는 아직 원액이 확 나오는 편이라고 할까—— 그림을 스스로 직접 그리니까요.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미야 씨(주: 미야자키 하야오)는 예외로 하더라도, 저나 다른 애니메이터들이나 다른 배경 스태프들이나… 성우분들도 목소리를 내니까요.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반드시 필터를 거치게 되는 구조예요. 정말로 원액 그대로 할 거라면 자신에게 카메라를 대고 스스로 뭔가를 해서 '자, 보세요' 하면 그걸로 끝인데. 뭐 그런 건 아무도 안 보겠지만요(웃음).
니노미야: (웃음) 그렇군요.
안노: 필터를 거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고, 비즈니스(상업성)도 성립하며, 게다가 적당히 희석된다는 말이죠. 자연 필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마실 수 없는 하수 같은 것이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 되어 있는. 그다음은 염소 냄새나는 것을 어떻게든 하자든가. 그런 레벨의 이야기네요.
- 자신을 벽에 파묻고 -
니노미야: (작품을) 내보내는 입장으로서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시나요, 필터를 거치더라도 저렇게 진한 게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들었거든요, 지금. 역시 진한 것을 좋아하시는 건가 해서요.
안노: 뭐, 이번에는 그렇습니다. 매번 바뀐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번에는 이렇게 되었지만 다음에는 또 역행하려고 생각하니까요. 다음 것은 원작물의 기획이고, 그 존재를 그대로 잘라낼 수밖에 없는 실사화니까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 같지만요. 그렇다고 해도 무언가 이렇게 배어 나오는 것이 자신일 테지요.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어디까지 얼룩이 나올까… 사람의 형태에까지 배어 나온다면 「아아, 나는 진한 편이구나」라고 (웃음). 어렴풋이, 뭔지 잘 모르겠는 얼룩 같다면 「아아, 나는 여기까지 자신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요. 자신을 벽에 덧칠해 밀어 넣는 느낌이라는 것이 또 좋다고 생각합니다. 뭐, 아저씨들에게 먹힐 만한 영화 제작 방식이라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방법론으로서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한 고집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진해졌습니다. 뭐, 그것을 계속 (그럴) 마음도 없다면 그것에 집착할 마음도 없어요. 하나의 작품이 끝나버리면, 또 하수도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니노미야: 다음은 어떤 것이 만들어질지 자신도 모르는 듯한 느낌일까요.
안노: 내가 가장 싫은 것은, 스스로 완성 형태가 맨 처음에 보여버린다는 점이에요
니노미야: 아, 그렇습니까.
안노: 에에. 그런 것은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편이 재미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니까요. 자신도 스태프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처음에 보이는 것은 자신이니까요. 뭐랄까 그것은 이득을 본 기분이랄까요—— 세상에서 가장 처음에 이 작품의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다른 누구보다도 빠르게, 확실하게, 그런 분이 하시는 게 즐겁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레일을 깔면서 열차를 달리게 하는 것 같아서요. 점토 세공 같달까요(웃음).
니노미야: 왜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했냐면, "실패하면 두렵다"라는, 우선 그런 두려움을 초월할 정도로 즐거워 보인다고 느꼈기 때문인데요.
안노: 『에바』에 관해서는 실패에 대한 공포라는 것은 없었지만 말이죠.
-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에 의의가 있다 -
니노미야: 만화의 경우에도 장편 연재를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굴러가는 것이 재미있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죠. 하지만 저의 경우, 최종적으로 이것만큼은 넣어서 이런 느낌으로 하고 싶다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지 않으면 작업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서 "아아 마감이 다가오고 있는데"라는 상태가 됩니다.
안노: 그것은 타입이라기보다, 사람마다 각각 다르죠. 사다모토 씨 같은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타입이에요. 최종 목적지를 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죠. 뭐, (그 방식이) 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함께 달리며 작업했으니까요. "내 쪽이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함께 달려가는 것은 상당히 힘들지 않았을까" 하고요. 템포가 달랐기 때문에, 저쪽은 저쪽대로 별도의 러프(콘티)를 생각하고 나서 그것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것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 요전에 어떤 남성 작가와 작품 제작 진행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만드는 방식을 듣고 보니 "아, 그건 터널 개착(開削)이네"라고 했습니다. 대개 다른 사람들은 빌딩 건설이거든요. 기초 공사부터 철골을 짜고, 외벽을 붙이고,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안노 : 남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토목과 건축이라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이 다르다고 합니다.
편집자 : 안노 씨 자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노 : 토목이 아닐까 싶네요. 설계도 없이 빌딩은 짓지 않잖아요. 터널은 출구를 정해두는 방식도 있지만, "어디로 나가든 상관없어"라는 식도 있으니까요.
편집자 : 뭔가 탈옥수 같네요.
안노: 아, 아닙니다. 제 경우는 터널을 파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어디로 나오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파고 들어가는 과정에 의의가 있는 거죠. 시간이나 경제력이 바닥나면 거기서 중단해도 괜찮습니다. 출구로 나온다고 해서 그렇게 가치를 느끼지 않아요. 최종적으로 출구가 나오면 기쁘겠지만요. 만약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인도 찍지 않고 터널을 파는 작업 같은 건 할 수 없고, 출구가 없으면 스태프를 되돌려 보내면 되니까요. 출구는 한쪽에 있으니, '여기까지다'라고 생각되면 "죄송합니다, 되돌아가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 산에서는 일단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최저한의 보증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거기서 터널 붕괴만은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서두르면 안 된다고. 출구 쪽에 바위가 우르르 무너져 내려서 막혀버리면 그건 이제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지잖아. 최소한, 되돌아서 그쪽으로 나올 수 있게는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그리고 또 하나는, 터널을 파고 있는 모습 자체가 그대로 예술이 되지 않으면 안 돼. 터널이 관통하는 사실보다도 파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재미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편집: 그건 실사든 애니메이션이든 마찬가지라는 말씀이군요.
안노: 내 제작 방식은 그 쪽 계열이라는 얘기죠
니노미야: 듣고 있으니 정말 부럽네요.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도 어쩌면 눈치채지 못한 채 (터널을) 파는 작업 자체를 즐기고 계신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먼저 앞에 아무것도 없으면 무섭다니…… ‘설마 그럴 리가요’라는 느낌이네요, 저는.
안노: 뭐, 그것은 각오 같은 것입니다.
니노미야: 이런 남녀의 차이로 말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여성이 좀 더 그런 부분의 각오는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안노: 여성이 기본적으로는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니노미야: 그러고 보니, 남성과 사귀고 있는 도중에 결국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항상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여성 쪽이네요.
안노: 이미지가 앞서 나가니까요.
니노미야: 아아, 그렇군요.
안노: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유일하게 인간에게 주어진 장점이 상상력. 뭐,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일은 최첨단이니까요. 하지만, 이미지 위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미지도 모델링(모방)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이미지도 그것에 이어지지 않으면 모델링도 아무것도 못 해요. 그 양쪽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다들 뭐랄까 좀 이상하네. 모델링의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어… 잊고 있는 걸까?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부정하는 걸까, 모르겠어…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있네요.
니노미야: 그것은, 최근 안노 씨의…
안노: 아, 아니, 모델링이 너무나도 당연해져 버려서 거기에 눈이 가지 않는 거죠. 여기까지 물건이 넘쳐나면… 70년대, 80년대 뉴욕 등에서 이미 이야기되던 것 같은데, 일본은 아직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말하지 않죠. 기본적으로는 원숭이 흉내를 내는 나라라는 뜻이에요. 인간은 모방할 게 없으면 안 됩니다. 무(無)에서… 제로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해요.
니노미야: 그렇군요. 네, 그렇네요.안노: 현실 속의 진실과 가짜(지어낸 이야기) 속의 진실 중에서, 가짜 속의 진실이 더 현실에 가깝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니노미야: 네, 그런 느낌이죠. 자신의 실제 체험이나 감상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리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라는 반응이 나오곤 해요. 아무래도 사실에 기반한 쪽이 잘 전달되지 않기도 하더라고요.
안노: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아무래도 최근 독자들의 생활이 그들 자신에게 그다지 재미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니노미야: 음. 일상이 지루한 사람이 늘어난 거겠죠.
니노미야: 안노 씨의 일상은 어떤가요?
안노: 감각적으로는 일로 도망치고 있는 느낌이려나요.
니노미야: 에, 도망치고 있는 건가요? 쫓기고 있다거나 빠져 있는 게 아니라요?
안노: 이른바 일상이라는 것이… 밥을 먹는다든가, 그러한 생활감이라는 것이 제 안에는 존재하지 않아서요. 뭐, 일만 한다고 해야 할까요. 제대로 된 생활을 하면서——가정을 꾸리고,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쪽으로 향할 에너지를 전부 작품에 쏟아붓고 있으니까 남들에게 평가가 좋을 뿐이지. 그 바탕에 무언가 확고한 것이 있는가 하면, 생활 기반이 전혀 없다고 해야 할까… 현실이 아니라 꿈속에 계속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니노미야: 제 밑에 깔려 있는 생활감이 없다는 것은 이해해요. 다만, 제 위에 있는 생활감…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버님, 어머님이 저무는데 인사를 오라든가 「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니?」라든가… 그런 것은 없나요?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물어보게 됩니다만.
안노: 아아, 예… 가족이라는 감각이 없어서요. 설날이라든가 가끔 전화는 합니다만, 그런 느낌은 아니에요. 그렇네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있습니다만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라….
니노미야" 그럼,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런 느낌인가요?
안노" 뭔가 그냥 지켜보고 있다고 할까….
니노미야: 아아. 그런 느낌이군요
안노: 최소한의 부모 자식 간의 대화 같은 것은 있습니다만, 평소에는 전화가 올 때 말고는 존재를 잊고 있어요. 여동생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쪽에서도, 이쪽에서도 전화를 한 적이 없어요.
니노미야: 흐음. 아니, 대단히 불경하지만 들으면서 부러웠습니다 (웃음). 저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건 단순히 「너 이런 걸 그리고 있니」라며 잔소리를 들을 것 같은 부모님이라서, 이제 그런 말을 듣는 게 귀찮으니까 입을 닫고 있는 거예요. 그것 말고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지금 가장 싫습니다. 내가 무언가 상대방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죄책감을 가져야만 하는 환경이라는 게 부러워요. 그게 없으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상황이 없다는 건―― 거만한 말투일 수도 있겠지만요.
안노: 뭐, 그런 게 없으면 자신의 존재 기반이란 게 없긴 하지만요.
니노미야: 그녀가 생겼을 때라는 건 그런 느낌이지 않습니까?
안노: 그녀가 있었을 때도 곁에 두고 있었네요. 그래서 일, 일 뿐이었죠
니노미야: 그래서, 죄책감에 가슴이 아프다거나… .라던가는, 없었나요?
안노: 울거나 하면 미안해지긴 하지만, 그건 그 순간뿐이에요.
니노미야: 울거나 하면 '미안하네'라고 생각해도, 나중에 성가시다고 느끼지 않나요? 아니, 그건 좀 너무한가.
안노: 뭐, 여러 가지 상황이 있으니까요. 울면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성가시다고 느낄 때도 있고. 그때의 감정 차이... 내 쪽의 기분 탓일까나, 그때의 상황 같은 것에 따라 달라지네요.
니노미야: 흐음. 그렇구나. 왠지 "사랑스럽다"라는 말이 나오면 두근거리게 되네요.
안노: 그건 아마 그럴 때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유가 있다면… 으음… 여유만 있다면 그런 것을 받아들일 틈 같은 것이 생기지만요. 일이 막히면 전혀—— 전화 한 통도 안 하거든요.
니노미야: 네
안노: 극단적으로 말해버리면,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니노미야: 으음.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이 그렇게 되다 보니 그런 마음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을 때는 몰랐었지만요.
안노: 자신이 가장 소중한 법이에요(웃음).
니노미야: 응. 그건 그렇죠(웃음). 그래도 "네가 가장 소중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렇다 저렇다 말해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라든가 자신이라든가일 거라고 생각하지만요.안노 하지만 뭐, 그 사람에 대해서 의존해 버리면—— 의존이라는 말은 최근 싫어하긴 하지만, 의존하게 되면 그 사람과 자신과의 경계선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니노미야: 아아, 그렇군요.
안노: 자신의 일부가 거기에 존재하는 셈이니까 그것은 자신이 좋다는 것과 동의어예요.
니노미야: 그, 자신과의 경계선이 없어진다는 것은—— 결혼에 가까운 것이군요.
안노: 결혼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계약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웃음).
니노미야: 절대적으로 사회적인 계약입니다만, 그렇게 하면 손익 계산부터 시작해서 자신과 상대방의 경계가 융합되어 버리잖아요. 그런 것은 있습니다.
안노: 성씨도 같아지고요. 그런 사회적인 융합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금 일본에서 생활하려고 하면 그건 (부부동성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도쿄 정도라면 동거라도 괜찮습니다만. 시골에서 동거라고 하면 이제… 받아들여지기 힘들지요. 도쿄라면 이웃 맨션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고, 그 사람이 결혼을 했는지 동거를 하고 있는지, 뭐 흥미가 없잖아요.
편집자: 시골이라면 개인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지요.
안노: 개인이 없죠. 공동체니까요. 하지만 일본에는 맞다고 생각해요. 뭐, 이 정도로 경계선이 없어져 버리면 그 사람이 자기의 일부여야 하는데,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에서 스트레스가 쌓여서 욱하게 되죠. 내 몸의 일부여야 하는데 전화해서 안 받는 건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요.
니노미야: 아하하하. 대단하네요 그거 (웃음).
안노: (웃음) 자기가 자기에게 전화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받지 않는다는 건 역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니노미야: 으음. 그거 대단하네요. 「너 전화했는데 없었잖아」라고 화내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겠습니다 (웃음).
안노: 그런 것(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전화했을 때 안 받아?"라고 해도, '그야 난 당신이 아니니까 언제나 대기하고 있을 순 없잖아'라고 말해도 그쪽에는 통하지 않죠 (웃음).
니노미야: 그걸 듣고 가슴이 철렁하는 사람은 꽤 많을 것 같아요 (웃음). 저도 그랬던 적이 있고요. 함께 사귄다는 건... 예를 들어 좁은 의미로, 남자친구도 혼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고, 나도 혼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서, '각자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거라면 괜찮지만요. 그런 이상적인 조건으로 융합하는 거라면 몰라도, 어느 한쪽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걸 채워주고 공급받기 위해서만 사귀는 거라면 '그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느낌이 들죠.
안노 : 아, 그렇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이상적인 커플이라는 건 참 찾기 힘들죠.
- 역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어머니인 걸까 -
니노미야 : 뭔가, 계속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적어도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잘 받아넘기면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좀 더 기쁘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사귀어 온 남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최근에는 내 이야기도 하고 싶어져서, "내 말도 좀 들어줘"라는 마음이 들곤 해요. 그건... 약해진 걸까나. 으음. 남자는 어떤 마음으로 여자와 사귀는 걸까나.
안노: 뭐, 기본적으로는 어머니의 대용품이니까요.
니노미야: 오오, 단정 지어 버리시는 건가요.
안노: 으음, 뭐 남자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영원한 오프쿠로(おふく로: 어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
니노미야: 그렇다면 저는, 적어도 여성으로서는 어머니를 뛰어넘을 정도로 당신을 기쁘게 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군요.
안노: 친어머니가 싫은 남자도 있는가 하면, 친어머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도 있는 법 아닙니까. 그건 뭐, 어머니의 무엇이라고 할까, 그래요, 취향이 다르다…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간 누구나 반드시 그런 면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옵션 파츠(부품)를 붙여서, 그런 것이 늘어나다 보니 여성 입장에서 보면 "아아 귀찮네(鬱陶しいな)"라고 느끼게 되는 거죠.
니노미야: 우후후. 응. 남자에 있어서의 어머니와 여자에 있어서의 아버지는 전혀 다르군요
안노:네, 전 다르다고 생각해요
.니노미야:저는 굉장히 복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가정적으로는 평범하게 시끌벅적한 어머니와, 있으나 마나 한 아버지, 그리고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적당히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그런 좁은 집에서, 어머니가 일을 하면서 허둥지둥 돌아오면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먼저 집에 와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고 옆으로 누워서 기다려요. 그리고 어머니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밥을 차리고 있으면 아버지는 한가하게 목욕을 하러 가죠. …그 목욕물을 데운 것도 어머니거든요(웃음).그리고 어머니가 목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머니는) 서둘러 아버지가 반주할 준비를 하고, 아버지가 반주를 하는 사이에 급하게 식사 준비를 마치고 나서 뒷정리를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그사이에) 선잠을 자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미워 죽겠는 거예요.그 어머니가 "너희들(자식들)만이 나의 낙이고, 너희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그것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거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와, 제발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곤 했어요.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래도 아버지는 자기가 직접 땀 흘려서 벌어온 돈으로, 적어도 나를 먹여 살려 주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럼 뭐, 어찌 됐든 그것만으로도 부모인 거구나' 싶어서 '에이 뭐, 됐어. 조금 제멋대로 굴긴 했어도 용서해 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서해 주자니 제가 무슨 대단한 사람 같네요(웃음).어쨌든 아버지에 대해서는 제 안에서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 끝내 결론이 나지 않는 존재는 어머니예요. 언제까지고 계속 "아~ 제발 그만 좀 해"라고 생각하게 만들죠. 역시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어머니인 걸까요.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빗나갔네요. 가정 사정인데요.
안노: 아니요. 듣고만 있기에는 재미있으니까요 (웃음).
- 흰 쌀밥에 마요네즈 -
안노: 편집자 님 계신 자리에서 이런 거 묻는 것도 좀 그렇지만, 여성지에는 연재 안하시나요?
니노미야: 최근에 한 편 그렸습니다.(주: 두번째 남자(二番目の男) 필 영(FEEL YOUNG)1997년 8월호 ) 여성지라 여성 독자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니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안노: 그렇습니까.
니노미야: 왠지 기분 탓인지 독자는—— 남성 독자도 여성 독자도 저에게 있어서는 남의 편이라고 할까, 애인 같은 느낌이라서요. "이렇고 저렇고 이렇잖아, 어쩌고저쩌고 말해봐"라며 말을 걸며 그리는 것과 같아서, 상대가 여성이면 마음대로 (느낌이) 달라지네요.
안노: 여성분들이 니노미야 씨의 작품에 대해 같은 여성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억지로 에로틱한 장면을 그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니노미야: 아하하. 제가 에로틱한 걸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억지로 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엄청 욕구가 있거든요, 동성에게는요. 기왕이면 남성 잡지도 훔쳐보는 듯한 감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고 할까요.안노: 그렇군요.
편집자: 안노 씨는 비교적 여성향을 많이 읽으시죠?
안노: 사실, 여성향만 읽습니다
니노미야: 네. 왠지 안노 씨는 특이하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안노 씨의 책장을 다 알고 있거든요. 머릿속—자신의 공간과 일의 공간, 이것만으로도 경계가 없는 사람은 드물어요. 상상할 수 없으니까 다들 다가와서 묻고 싶어 하는 거죠.
안노: 그렇습니까 (웃음)
니노미야: 그렇지 않을까나 (웃음).
안노: 내가 그렇게 특이한가 (웃음).
니노미야: 특이해요, 특이해. 일적인 면이 대단하다거나 그런 부분에서 특이하다기보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설마 본인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같은 느낌이에요.
안노: (웃음) 특이한 사람이군요. 뭐, 살아가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서 그렇겠죠. 적어도 먹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집착이 없으니까요. 먹는 것에 집착이 없다는 것은 살아가는 일에 집착이 없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니노미야: 고기랑 생선이랑 달걀을 못 드시는 거였죠.
안노: 달걀은 괜찮습니다.
니노미야: 아니, 어린아이의 편식과 같이 취급하면… (웃음).
안노: 아니, 어릴 때의 편식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계란말이를 좋아한다는 게… 어린아이와 똑같은 거죠.
니노미야: 어릴 때라고 하니 저도 고기랑 생선이랑 채소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뭘 먹었냐고 하면 흰 쌀밥을 제일 좋아했어요.
안노: 에에.
니노미야: 그 흰 쌀밥에 소금을 뿌려서 먹는 걸 제일 좋아했어요.
안노: 아, 저는 마요네즈입니다.
니노미야: 마요네즈는 그 위에 간장을 뿌리면 더욱… (웃음). 그래서 밥에 뿌리면 먹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라고 말씀하셔서요.
안노: 배가 고프면 먹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비가 내리고 있다면 말이죠. 비를 맞아가면서까지 편의점에 가려고 하지는 않아요. 별로 돌아다니지 않는데, 설 연휴라든가 이럴 때 귀가하잖아요. 자신의 아파트에요. 그러면 아파트 근처에 편의점이 없어서 3~4일 동안 안 먹기도 합니다.
니노미야: 우와~. 3일이나 4일 동안 말인가요.
안노: 네.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번거로워요. 그러니까 안 먹는 편이 낫죠. 아파트에서는 이미 7~8년 정도 물을 끓여본 적이 없어요. 냉장고도 6~7년 동안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라서 무서워요. 전원을 꺼두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마 7~8년 전의 맥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니노미야: 저기… 얼음 추천해요. 항상 식용으로 얼음을 만들고 있어요. 입에 들어가기 쉽게 작게, 수돗물로 만들어서… 그 염소 냄새가 기분 나쁘고 좋은 거예요.
안노: 얼음은 어릴 때 좋아했어요.편: 전혀 음식 얘기가 아니네요.
니노미야: 고기나 생선 같은 걸 싫어하는 건 생리적 혐오인가요?
안노: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접시에 담겨 있는 게 시체로 보여요. '아, 생선이 죽어 있다', '소 가 죽어 있다'라고요. 고기는 부위별로 나오니까 전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생선은 전체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니노미야: ~에 있기 때문에 시체로밖에 안 보입니다. 동물이라든가 생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좋아했다면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생물을 싫어하는 거군요.
안노: 아, 그래도 싫어한다고 말해주는 편이 이해하기 쉬워서 좋습니다. "불쌍해"라고 말하면서 안 먹는 사람은 주먹으로 때리고 싶어지지만요.
니노미야: 불쌍하다는 것과는 다르군요.
안노: 싫어하는 겁니다.니노미야: 그것은 인간도 포함해서입니까?
안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요.니노미야: 그나저나 급식 먹을 때 고생하셨겠어요. 다 먹을 때까지 교실에 남겨지는 부류로군요.
안노: 네, 그렇습니다. 남겨지는 부류입니다.
니노미야: 점심시간에 모두가 밖에서 놀고 있는데 혼자 덩그러니 책상에 남아 먹게 하고 있는——먹는 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인가요?
안노: 네, 안 먹었습니다.
편집자: 그래서 선생님이 포기하셨나요?
안노: 아니요. 열정적인 선생님이 계셔서, 제가 급식을 다 먹을 때까지 본인도 집에 안 가셨어요. 그래서 계속 밤 8시까지 남아있었죠. 결국 안 먹었고, 돌아가는 길에 초콜릿을 주셔서 운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니노미야: 싫지 않으셨나요? '선생님 왜 빨리 집에 안 가시는 거야'라면서요.
안노: 아니요, 딱히요. "먹어라"라는 말을 들어도 "아뇨 안 먹겠습니다" 했습니다." "먹어라"라는 말을 들으면 더 먹기 싫어져요. 고집불통이었던 거네요.
니노미야 하아.안노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시의 모델 학교여서, 교육위원회가 뭔가를 생각해 내면 여기서 시험해 보곤 했어요. 거기서 "편식 아동을 없애는 시스템을 만들자"라고 해서, 전교에서 엄선된 편식 아동을 비어 있는 교실에 격리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일대일로 지도를 하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쭉 나란히 앉아서 각 반에서 1명씩 한 달 정도 했던 걸까요. TV가 취재하러 왔던 게 기억나니까요. 그중에서 유일한 실패 사례가 바로 저예요.
니노미야: 괴롭지 않으셨나요?
안노: 괴롭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못 먹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처음부터 음식이 아닙니다. 먹을 거리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니노미야: 음식 자체가 어떻다기보다, 옆에 계시는 선생님(아내)이 괴롭지 않으셨을까 해서요.
안노: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잘되라고 생각해 주시는 일이니까요. (제가) 워낙 진수성찬에 흥미가 없다 보니, 높으신 분들이 대접해 주실 때 곤란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급 요정(料亭)에 데려가 주셔서 가이세키 요리(懐石料理)가 나와도 무엇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게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죄송하지만 치워주세요"라고 합니다. 만들어 주신 분에게도 죄송하고요.
니노미야: 상스러운 질문입니다만, 그런 가게보다 풍속 같은 곳에서 접객해 주는 편이 좋습니까?
안노: 아니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풍속도 안 가고요. 최근에는 그냥 익숙해져서 말이죠, 언니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어요.
니노미야: 그것은 본인이 먼저 말을 꺼내는 건가요, 아니면 그쪽에서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걸어오는 건가요.
안노: 여기에는 요령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 거예요. 그러면 안심하고 확 이야기해요. 그런 사람의 이야기라는 건 재미있단 말이죠. 스스로는 생각지도 못한 인생 같은 게 있으니까요.아아, 재미있네 하고… 그쪽으로 의식이 가기 전까지는 싫어서 싫어서 어쩔 줄 몰랐지만요. 처음에는 (내가) 대접받고 있다는 의식도 있어서 어울렸습니다만, 점점 시간이 촉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 '그런 곳이라면 이제 안 가'라며 돌아오곤 했지요. 물장사 업종 사람이라는 건 프로이지 않습니까, 남자를 치켜세워 주는. 돈의 거래와 인간관계 사이에 돈이 얽혀 있으니까요.
니노미야: 하지만 별로 변하지 않아요. 사이에 돈이 있는지, 관심이 필요한지 말이죠. 말의 주고받음을 원하는지, 조금이라도 (상대의 사정을) 알고 싶을 때와 돈이 조금이라도 필요할 때와 별로 변하지 않네요.
안노: 뭐랄까, 엄청 찰나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런 곳은 체인지가 있단 말이죠. 얘기하다가 '아, 그렇구나.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할 때쯤에 "죄송합니다, 저쪽 테이블로" 라며 이동해서 또 다른 사람이 오는 식이라, 그렇게 되면 표면적인 부분에서 전부 끝나버려요. 뭐, 그쪽도 그냥 손님이니까 다음에 올지 어떨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되면 프로의 대화 같아서, 그 감각이 조금 울적하고 싫었어요. 그것보다는 차라리 여대생 쪽이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하고. "요즘 학교 어때?"라고 물어보고 있으면 그걸로 끝나니까요. 이건 편해서 좋아요. 이쪽이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얘기해 주니까요.
니노미야: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게 역으로 귀찮을 때라는 건가요?
안노: 으음. 타인이 울적해질 때라는 건 있네요. 레카(공중전화 카드)가 보급되지 않아서 10엔짜리 동전으로요. 그 한 장까지 다 꺼내 달라고 했어요. "줘"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전화 걸러 갈 테니까"라면서 "오오" 하고 내밀더라고요. "잠깐 저기 편의점 좀 들러줘"라고 해서, 거기서 자기가 사고 싶은 잡지를 사 오더니 싫은 표정을 짓는 거예요. "왜 나랑 같이 계산 안 해?"라고요. 어쩌면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노: 그것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그걸 원조교제라고 말하자면 전업주부도 모두 그런 일이라는 거죠. 이건 극론이 되어버리긴 합니다만, 원조교제와 결혼이라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라는 큰 차이가 있을 뿐이죠. 남성 쪽은 여성에게 돈을 건네고 바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이나 가치관을 확인하는 것이고, 여성 쪽도 돈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이나 가치관을 인식하는 것이니까요. 서로 그것으로 납득한다면 저는 그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하고 결정하는 것은 세간이 결정할 일이겠지만요.
니노미야: 네. 아무것도 우리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같은 걸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단지, 지금도 포함해서 말이죠…… 남성과 사귀었던 시절은 자신의 가치관이라는 것이 호감을 사고 있는가 라든지, 기분이 와락 솟구쳐 오른달까, 그런 느낌으로요. 돈이 아니라, 무언가 …가치관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안노: 뭐, 사람에 따라서 섹스라는 게 그런 법이니까요.
니노미야: 흠흠(웃음), 그렇군요.
안노: 그것만큼은 상대가 없으면 불가능하니까요. 자신도 원하고 상대도 원하는, 그런 것입니다. 뭐, 가장 간단한 방법론으로서, 상대를 필요로 하는 행위로서는 누구라도 할 수 있죠
니노미야: 섹스를 하거나 연애를 한다는 것은, 어쨌든 자신이 무언가가 되기 위한 가장, 최단 거리인 법이니까요.
안노: 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최단 거리죠. 게다가 쾌락까지 따르니, 이건 최고예요. 빠져드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관계를 했을 때는 '역시 이런 거였구나!' 하고 생각했었거든요.
니노미야: 그 정도 였나요?
안노: 네.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었거든요. 젊은 시절에 처음으로 그런 일을 했을 때, '아, 과연, 이래서 다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구나' 하는 게 첫 감상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나 감각 같은 것을 전부 포함해서요. 다들 일생 동안 왜 그렇게 열심히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생각했었거든요. 쾌락뿐이라면 혼자서 하는 편이 마음 편하지 않습니까.
니노미야: 그렇네요.안노: 남자의 경우, 특히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니노미야: 맞아요, 저도 남자가 왜 (섹스를) 하는지 잘 몰랐거든요.
안노: 뭐, 혼자서 하는 편이 편하기도 하고,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상대방이 없어도 되니까요. (섹스에) 이르기까지의 시뮬레이션이라든가, 삽입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든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겨우 그 고지에 도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부분을 다 건너뛰고 할 수 있다면 돈을 (써서)라도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만족감이라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행위 자체는 혼자서 하는 편이 모두가 편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자위를 선호하는 사람가 많다는 건 이해가 갑니다. 요령을 스스로 알고 있는 만큼,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니노미야: 으음. 만족감인가요?
안노: 예. 충실감과 만족감. 전에 스피리츠(만화 잡지)에서 연재했던 아이하라 코지(相原 コージ)씨의 한 칸 만화에서 "지금 자위는 안 하는 편이 나았겠네"라는 걸 봤을 때는 '과연!'이라며 (웃음·무릎을 탁 치며). 꽝인 자위.
니노미야: 뭔가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네요 (웃음).
안노: 매번 좋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니노미야: 죄송합니다만, 그건 사정하고 나서인가요? (웃음).
안노: 네, 그렇습니다. 사정감(射精感)이라는 것도 좋은 섹스라는 생각도 들고, 오줌과 똑같이 배출하는 것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이 먹고 몽정하는 것도 싫고, '슬슬 배출해야 하나, 안 그러면 곤란하겠지'라는 느낌―― 그건 배설물과 다름없네요.
니노미야: 제가 처음으로 섹스를 했을 때는 쾌감 같은 건 잘 몰랐는데요, '일단 발정(사카루)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밤에만 겨우 만날 수 있는데 시골이라 밖으로 나오는 게 곤란해서, 2층 방에서 지붕을 타고 내려와 만나러 가곤 했죠. '아, 동물 같네'라면서요. 행위 자체의 좋은 점은 딱히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만나러 가고 싶은 걸까 하고요. '아아, 발정해 있구나'라는 건 이런 일을 두고 말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 민주주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독재 -
안노 : 전쟁에 나가면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은 지치고 힘들겠지요. 보통 인간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꽤나 지쳐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별로 보도하지 않았잖아요.편 베트남 이후부터겠네요.
니노미야 : 왠지 상상 속에서는 안노 씨가 전쟁에 가면 상사 같은 사람에게 맞을 것 같아요... 아니, 되게 같이 있게 되어버린 거예요 "(급식을) 먹어라"라고 말하는 선생님과.
안노: 최전선에 가면 아마 아무것도 못 하겠지만, 가장 후방에서 작전을 세우라고 한다면 저는 꽤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살인 현장을) 보지 않으면, '이 작전으로 저쪽 병사도 몇만 명이나 죽고, 이쪽 병사도 몇만 명이나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작전을 세우고 실행해 버리겠죠.
니노미야: 그렇군요. 이제 (감독이라는) 지금의 평범한 생활 위에서도 지휘관 같은 거잖아요. 모두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안노: 예. 그러기 위해서 싫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뭐, 묵묵히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편집자: 실패하면 모든 책임이 따르니까요.
안노: 뭐, 나이나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지만요. 전쟁에서 졌을 때 저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구 일본군의 장교였다고 한다면 말이죠. 8월 15일에 죽었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대신해서 살아남아 뒷수습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때 내가 최고 책임자였다면 죽었을 것이고, 2인자나 3인자였다면 그 뒤를 쫓아 죽는 게 아니라 뒷수습을 하려고 했을 겁니다.
편집자: 애니메이션 세계는 책임의 소재가 확실해서 깔끔하네요.
안노: 감독이라는 게 원래 그런 존재니까요. 작품은 감독의 것이니까요.
니노미야: 그러니까요. 이 민주주의 세계에서 드물게 남아있는 독재이니까요. 감독은 절대적입니다.옛날부터 그랬군요.
안노: 모든 악평도, 감동의 목소리도, 감독을 위한 것입니다. 그곳에는 각본이 좋았다거나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 대본을 쓴 감독의 공적일 뿐입니다. 그만큼 실패했을 때도 감독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법입니다.
편집자: 네르프는 가이낙스라거나 겐도의 모델은 안노 씨 자신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니,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뭐, 인류가 최초로 가졌던 조직 같은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라는 것이 있겠지만, 결국 군대에 비유하게 되니까요.
안노: 군대라는 것은 조직의 세련된 형태이니까요. 목적도 심플하고요. 그런 점에서 알기 쉽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도 명쾌하니까요.
니노미야: 사람 위에 서는 두려움… 그런 것이 일상인 거군요.안노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감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편집장님, 안노 씨를 보고 있으면 특히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안노: 마치 그렇다는 것 같네요
- 허구 속의 리얼리티 -
안노: 만화 되게 재미있어요.
니노미야: 정말인가요? (웃음)
안노: 에로틱한 것은 여성이 그린 것이 좋습니다. 남성이 그린 에로틱함은 그리 사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든요. 이상적인 에로틱한 상상(H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런 짓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책상 위에서 머리로만 쓰고 있는 느낌이죠. 여성 작가가 그린 레이디스 코믹(여성향 만화) 같은 쪽이 훨씬 더 생생하고 좋습니다. 여성분들이 이러한 부분을 현실적으로 제공할 수 있더군요.
니노미야: 아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지에서 만화를 그리면 공감은 더 많이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도 저도 원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니까요. 놀라움이라든가, "우와 잠깐만", "거짓말이지?" 같은 반응을 원하거든요. "당신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더 많이 주고 싶다"라는 일종의 야망 같은 것이 있어서 좀처럼 달성하기가 쉽지 않네요.
안노: 보는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쾌락만을 추구해서—— 돈을 지불하면 반드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단순하게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그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뭐,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지만요. 당근과 채찍이죠.
니노미야: 당근과 채찍, 말입니까.
안노: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우는 것도요. 그러니까 어차피 화를 낼 거라면 진심으로 화나게 만드는 편이 좋아요. 어설프게 화나게 만드는 것보다요. 그것(화를 낸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판단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둘 다 등가(等價)입니다. 단지 이런 부분에 까다로운 사람은—— 세상에는 음... 정말로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는 건 확실히 존재하니까요.
니노미야 :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 신화군요.
안노: 네. 제가 보기에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건 확실히 존재합니다.
니노미야: 으음, 무섭네 부러워.
안노: 아니, 딱히 존재하는 건 상관없어요. 단지 제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뿐입니다. 제 시야에서 벗어나 있으면 오케이입니다. 어차피 상관없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게 좋은 법이에요.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행을 느낄 일이 없는 의사(유사)적인 행복의 껍질 속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네요. 그런 사람들은 건드려봤자 아무 소용 없으니까요. 그래도 찔러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건 있었지만, 예상대로라는 확인은 되었네요. 이제 충분합니다.
니노미야: 그럼 다음 (작품)은 끝까지 파고들기 위한 것이 아니군요.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안노: 으음. 무엇을 하려는 걸까나. 허구 속의 리얼리티라는 것은 끝까지 파고들어 보고 싶네요. 물론, 보고 있는 사람이나 읽고 있는 사람이 공감한다는 것이 리얼리티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방정식이 있긴 합니다만, 그 방정식 이면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최근 생각합니다. 허구란… 무엇일까… 허구 구상과 환상과 현실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필름이나 영상 쪽으로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와 픽션과 환상.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의 환상, 모든 것이 허구이니까요. 어디에도 현실이라는 것은 없는 셈입니다. 셀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런 아이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셀화이니까요. 실제로 그 사람이 존재해서 자신의 성기(친친)를 빨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은 산더미처럼 많지요….
니노미야: 있긴 하지만요(웃음).
안노: 신기하단 말이죠. 셀화 속 누나(캐릭터)는…… 이런 아이는 어디에도 없단 말이죠. 굳이 말하자면 하야시바라 메구미라는 사람이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어서, 목소리만 존재해요. 그러니까 성우 분과의 일루전(착시)이 흐르는 도식이 성립되죠. 나머지는 그림으로서 존재할 뿐이지만, 그 캐릭터라는 것은 실제로는 없는 셈입니다.그 안에서 저마다의 리얼리티를 모두가 찾아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 아닐까 하고요. 자신 안의 현실과 대조해 보았을 때, 딱 들어맞는(매칭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노미야: 저도 그 매칭을 (수용자로서) 받아들이는 사람 중 한 명이라, 왠지 부끄러워지네요.
안노: 전부 허구의 세계(픽션)와 다큐멘터리가 대립했을 때 어느 쪽이 이기는가 하는 것은, 그것이 방법론의 차이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픽션이 다큐멘터리를 이기는 순간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고요. 역시 하라 카즈오(原一男) 감독님의 척척 나아가서, 신군(ゆきゆきて、神軍, 한국 개봉명: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같은 작품을 보면, 과연 ‘진짜’의 강함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진짜군요. 확고한 진실 같은 것입니다. 픽션 안의 진실——본물의 순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요. 최근에는 그쪽의 의문도 있어서 실사를 해볼까 하고요. 방법론의 그림자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인가.
니노미야: 블랙박스 같네요.
안노: 이번 영화로, 셀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는, 생각나는 일은 거의 다 해버려서(웃음).
니노미야: 으음, 얄밉네요(웃음).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는 부분이.안노 잠깐 지금, 소재가 없어서(웃음). 실사를 하지 않으면 다음을 못 하겠어요. 『에바』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은 40(세)이 되기 전까지는 연달아 가자고요. 이전에, 4년이나 쉬었으니까(웃음).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35에서 40 정도가. 선배들을 봐도 모두가 그래요. 타카하타 이사오(高畑 勲 ) 씨도 미야 씨(미야자키 하야오)도, 토미노 요시유키 씨도 데자키 오사무(出崎統) 씨도 이시구로 노보루(石黒昇) 씨도요.
니노미야: 혹시 체력적으로도 그런 면이 있다거나...
안노: 네. 평생 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건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다음에는 내리막길을 어떻게 억제하느냐의 문제겠죠. 정점(피크)은 이미 지났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이 정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있습니다. "안노 씨는 에반게리온이 제일 좋았네"라는 말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니노미야: 안노 씨의 입에서 '공포'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 울림이네요. 그건 "이만큼 성공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음... 저는 훨씬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데뷔가 늦기도 했고, 실력이 따라잡기 전에 전성기가 지나 내려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내려가 버리는 공포 같은 게 있으니까요.
안노: 저는 제가 오래 살 거라는 이미지가 별로 없어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공포감이라는 게 없어요.
니노미야: '확 피었다가 확 져버리자'는, 그런 건가요?
안노: 네. 뭐랄까, (죽음이 찾아와도) '그야 뭐 그런 거지' 하는 게 어느 정도 있어서요. '
편집자: '에반게리온도 이제 그만 만들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은 있나요?
안노: 에바에 관해서는 이제 한 편 더 만드는 건 없어요. 얼마 전에 끝났으니까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웃음). 별로 죽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이미지는 없네요.
안노 뭐, 저는 자987살을 긍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야 인간은 죽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편이 좋죠. 다만 종착점 정도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더 살고 싶어도 죽어버린 사람이 많으니까요. 중학교 때 친구가 암으로 죽었을 때는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29살 때였는데요. 그때는 평범한 생각이지만 그 친구 몫까지 살아야겠다고 솔직하게 생각했습니다. '왜 이 녀석이 여기서 죽은 거지' 하고요. 아무것도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인생을, 남겨진 29세에... 또 한 사람, 2년 전에. 이쪽은 교통사고로. 이것은 운이 나빴던 거지만요. 경솔한 녀석이었으니까 말이죠... 양쪽 다 괴로웠습니다.
니노미야: 불온한 이야기입니다만, 안노 씨가 죽는다면 현장 분들은 곤란하겠네요. 지휘관이시니까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얼마 전까지 안노 씨가 가이낙스의 사장인 줄 알았습니다 (웃음).
안노: 사장직은 싫으네요
니노미야: 감독님은 괜찮으신가요?
안노: 사장은 (직원의) 생활을 보장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감독이라는 존재는 작품만 보증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그에 걸맞은 보수를 가져다주면 되는 거죠. 생활 보장이라기보다는 일에 대한 보상에 대한 걱정뿐—— 아, 정신적인 만족감이요. 그 일을 하길 잘했다는 느낌. 그것을 주는 것에 전념하면 됩니다.그것이 사장이 된다면, 회사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다음 애니메이션은 무엇을 할까"라는 점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감독은 현장을 지키는 존재라고 해도, 그것은 작품을 만들고 있는 동안뿐이며, 작품이 완성된 순간부터 현장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법입니다. 사장은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지속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골치 아픈 일을… 그럴 거라면 가족도 지키고 있겠지요(웃음).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것을 지킨다는——내가 지키는 것은 작품뿐. 즉, 스태프입니다. 도와준 사람이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작품이 흥행하더라도, 남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하는 것은 스태프의 귀에도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대표일 뿐입니다. 거기에는 독재라는 시스템도 깔려 있습니다만, 그것이 영화라든가 영상이라는 것이므로, 실패해도 감독의 책임이고 잘 되어도 감독의 책임입니다. 그것만큼은 확보해 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니노미야: 오히려 제대로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하는 거라면 독재를 하는 편이 좋을 정도네요. 저는 수행 중입니다(웃음). 독자의 기폭제가 될 만한 작품을 목표로 하고, 뒤에서 몰래 공부해서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요, 마침 그게 생각나서요"라는 말을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안노 씨가 말씀하신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버렸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안노: 응. 그래도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까요.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떠오르는 일은 다 했어요.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겠지만요. 그리 좋은 제작 방식은 아니지만요. 다음은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니노미야: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이상적이에요.
안노: '에바'에 관해 말하자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는 상황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노력은 자랑거리가 되지 않아요. 「이렇게 노력했는데」라고 하는 건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니노미야: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言わぬが花)」이라기보다는…
안노: 「이렇게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말해도 「그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지」라는 말을 들으니까요.
니노미야: 그래도 말해버리게 되지만요.
안노: 에에.
니노미야: 어떤 의미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되어보고 싶은 상황이에요.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게 아니라—— 호흡하거나 심장을 움직이거나 하는 것과 일의 경계가 없어지는… 애매해지는 듯한 상태라는 것은 뇌내 물질이 마구 분비되는 듯한 느낌이겠네요.
안노: 네. 뇌내 물질이 마구 분비된다고 해야 할까요. TV판 최종 2화입니다. 그 때는 즐거워서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어요. 그 시간은 좋았습니다. 스태프도 힘들었지만요. 그걸 3일 만에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스태프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한계 같은 부분까지 가서 거기까지 해내고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의 반동이라는 것은 그 뒤에 쾅 하고 찾아왔습니다만, 그것도 뭐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었고, 약(약)도 맞지 않고 이런 다운된 상태가 될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요. 그때는 정말 싫어서 어쩔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요.
니노미야: 한 번은 경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안노: 뭐, 이런 건 집단 작업이니까 한층 더 거대해집니다. 니노미야 씨에게도 그 부분은 칭찬받았습니다(웃음). 재미있을 것 같은 거로 치면, 연극이나 AV 같은 것도 해보고 싶습니다.
니노미야: 제작비를 별로 들이지 않는 느낌인가요?안노: 이번 영화도 그렇게 돈을 들이지 않고 하고 싶단 말이죠.
니노미야: 제작 기간도요?
안노: 실사 영화의 좋은 점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단기 집중이니까요. 3개월 만에 90분짜리 애니메이션은 만들 수 없으니까요. 그만큼 체력을 쓰긴 하지만요. 이번 여름은 하루에 3끼를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네요(웃음).
니노미야: 오오(웃음).
안노: 실사는 내가 쓰러지면 전부 멈춰버리잖아요. 애니메이션의 경우, 감독은 가장 마지막에 검열(확인)하는 입장이라서 올라온 결과물을 체크하고 NG를 내거나 OK를 내거나 하죠. NG인 경우는 직접 그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다시 배정하기도 하고요. 실사의 경우는 선두 차량 같은 겁니다. 제설차 같은 존재죠. 내가 맨 먼저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돼요. "자, 여기에 카메라를 놓아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카메라맨은 움직이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지쳐 쓰러져서 "그럼 대충 그쯤에서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편집자: 더운 날이 계속되니까요… 그런데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안노: 여름에는 애착이 강하네요. 여름을 좋아하는 건 그저 어릴 적에 여름방학이 있었다는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편집자: 지금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요?
안노: 즉답을 못 하겠네…. 없는 걸까. 그것이 쓸쓸하다는 뜻일지도.
편집자: 반대로 엄청 사치스러운 일일지도 몰라요.
니노미야: 게다가 좋아하는 일은 제법 많이 있으시잖아요
.편집자: 안노 씨 철도 좋아하시죠.
안노: 빨리 500계(신칸센)를 타고 싶습니다. 실사 촬영이 끝날 때쯤——늦가을이 되면 도쿄까지 올 겁니다.
편집자: 그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네요.
안노: 500계는 HO게이지도 N게이지도 출시되지 않았단 말이죠. 노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웃음). 철도 모형은 돈이 없으면 못 하니까요. 저걸 하려면 돈이 꽤 듭니다. 넓히기만 할 장소와, 전부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손에 넣지 않으면—— 돈 많은 사람의 도락이니까요.
안노: 그리고 만들 시간이죠. 절대 레이아웃에 집착할 것 같으니까요. 아니, 안노 씨의 입에서 '노후'라는 단어를 들어서 안심했어요 (웃음).
니노미야: 네. 신기하다고 할까, 귀여운 느낌이네요.
안노: 노후의 취미는 그거예요. 전에는 철도 모형을 서서 읽는 정도였지만 (웃음), 그래도 500계가 나오면 사버리겠죠. 결국 살 때가 (웃음). 사기 시작하면 무서워요. LD(레이저디스크)가 그랬거든요.
편집자: 계속 사버렸으니까요.
안노: 달리 돈 쓸 데가 없으니까요.
편집자: 하지만 볼 시간이 없네요. 컬렉션의 살찌우기(웃음).
안노: 인게이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
니노미야: 여기 올 때 생각했던 건데 단순해서, 더는 에반게리온 얘기는 싫다고들 물어봐서——3번이고 4번이고 똑같은 이야기를 떠들어서 지긋지긋해하고 있을 테니까…라고요.
안노: 아니, 아직은 괜찮아요, 그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웃음).
니노미야: 앗, 그렇습니까(웃음).
안노: 그러니까 이제 종이에 써서 돌릴까 하고요(웃음).
<1997년 7월 14일 도쿄도 미타카 시(三鷹市) GAINAX 본사에서>
주: 인터뷰 시간 - 총 19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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